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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NOTE Reporting

“세계질서를 재편할 핵심무기를 선점하라!”, 불타오르는 ‘반도체 패권전쟁’, K-방산이 가야 할 길은?

by c.wooj 2023. 11. 3.

■ 美 대통령 손에 들린 ‘웨이퍼’, “반도체, 세계질서를 재편할 ‘핵심 무기’로 올라서다”

2021년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진행한 반도체 전략회의에서 조 바이든 美 대통령이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2021년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손에 들고 “내가 들고 있는 칩, 이 웨이퍼를 비롯해 배터리, 광대역 통신은 모두 인프라”라며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제조업을 다시 부활시키겠다”고 발언합니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패권’을 선언한 것입니다.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였던 반도체가 세계질서를 재편할 ‘핵심 무기’로 올라선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 반도체 생태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경합이 어느 때보다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대한민국도 칩(Chip)을 놓고 벌어지는 글로벌 패권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지요.

이렇듯 엄중한 시기, 한국경제TV에서 ‘반도체 패권전쟁, 한국의 해법은’을 주제로 뜻깊은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10월 27일 열린 이날 행사에는 아론 로니 채터지 前 미국 백악관 칩스법 조정관, ‘칩워(Chip War)’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교수가 주제 발표자로 연단에 올랐습니다.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이끈 진대제 前 정보통신부 장관과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도 함께 참석해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경제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은 물론 최첨단 무기체계의 핵심 구성품으로서 반도체가 가지는 특별한 ’지위‘에 대한 해석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여기에 더해, ‘L Note Reporting’에서는 방위사업청을 비롯해 군/산/학/연/군이 준비·진행 중인 ‘국방반도체’ 정책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1. 美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정책을 추진 중에 있을까요?
2. 미래 무기체계에서 반도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 국내 방산업계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이제 한-미 반도체 전문가들의 ‘답변’에 주목할 때입니다.

 

 

1. “천문학적 보조금과 對 중국 견제”, 당근과 채찍 정책으로 반도체 생태계 확보 나선 美 정부

美 반도체 정책에 대해 설명 중인 아론 로니 채터지 前 미국 백악관 칩스법 조정관

1990년대까지 한 때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중 40%는 미국에서 나왔지만, 현재는 10%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를 안정적인 비용으로 적시 조달하는 것이 美 정책 기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1년 팬데믹 여파로 발생한 반도체 공급대란에 美 자동차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최첨단 반도체가 아닌, 설계가 단순한 범용반도체 수급난으로도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사실에 美 정부가 고민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반도체 강국으로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 들고 나온 정책이 바로 ‘반도체 칩과 과학법’, 이른바 칩스법입니다.

칩스법의 두 가지 축은 천문학적 ‘보조금’과 ‘對 중국 견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입니다. 그만큼 절실하고 급박하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씩 살펴볼까요?

칩스법에 따라 반도체 사업을 미국에서 영위할 경우 직접 보조금을 5~15%까지 지원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28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총 360조원이 넘는 재정이 투입됩니다. 미국 내에서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는 기업에게 총 70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美 전역에 생산 설비와 전문 인력 등을 확보해,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지요.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단기적 성과는 나쁘지 않습니다. 법 시행 이후 지난 1년간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고 의향을 밝힌 기업만 460개가 넘고, 약속된 기업들의 투자금액은 200조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삼성전자가 텍사스, TSMC가 애리조나를 신규 공장 부지로 삼는 등 美 전역의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다음은, ‘對 중국 반도체 견제’ 정책입니다. 美 정부로부터 세액 공제 및 보조금을 지원받는 미국 및 해외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추가로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바로 그것입니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등의 국가에 美 정부가 정한 상한선(첨단 반도체 5%, 범용 반도체 10%) 이상으로 생산능력을 확장하려면, 수혜 금액 전액을 반환해야 합니다.

당장 중국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에 한미 양국은 삼성전자 및 SK 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해 별도 허가 절차 및 기한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공급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했지만, 가드레일이 존재하는 한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미국이 쏘아올린 공은 전세계 반도체 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유럽, 인도, 일본 등 타 정부들도 보조금을 앞 다퉈 투입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죠. 국내에서도 시설 투자 보조금 및 세액공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반도체 특별법, 이른바 K 칩스법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습니다.

해당 정책을 주관했던 아론 로니 채터지 듀크대 교수는 미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한 강력한 반도체 지원법인 ‘칩스법’은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美 대선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습니다.

그만큼 반도체 산업이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초당적 지지의 근거가 되는 또 하나의 이유에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바로 반도체를 선점하는 자가, 첨단 무기체계 생태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반도체를 선점하는 자가 무기체계 생태계를 지배한다”, 반도체 패권전쟁의 또다른 이유

초창기 NASA 로켓 및 유도무기 등에 탑재된 반도체에 대해 설명 중인 크리스 밀러 교수

‘칩워(Chip War)’를 저술한 크리스 밀러 교수는 반도체의 탄생과 발전이 현대 무기체계의 개발 역사와 궤를 함께 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반도체는 초창기 NASA 로켓, 핵 미사일 등에 사용된 것은 물론 유도무기, 감시정찰, 통신장비에서 위성에 이르는 첨단 무기체계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크라戰에서 드론을 비롯한 자율 무기체계가 위력을 증명하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갖게 됩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장에서 한 달에 약 1만 기의 드론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현대 전장에서 자율 또는 원격 조종이 가능한 대규모 솔루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美 국방부도 단기간 내에 수천 기 이상의 AI 기반의 가성비 무기체계를 확보하기 위한 레플리케이터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도의 학습/판단 역량을 제공하는 반도체는 AI 반도체를 완성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AI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며, 대량의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이 첨단 무기체계 개발의 핵심 요소가 된 것입니다.

상용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 국방 및 민간용 반도체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부품 부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는 수입된 부품을 전용해 무기체계에 장착하고 있다고 합니다. GPU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원하지 않더라도, 민간용 칩이 국방 분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죠. 국방과 상업 분야에 모두 적용 가능한 ‘이중용도 솔루션’이 빠르게 확장 중인 미국 및 중국도 유사한 상황입니다.

중국이 2015년 ‘반도체 굴기’ 정책을 시행, 막대한 지원금을 통해 SMIC와 같은 자국 기업들을 키워내며 ‘반도체 자립’의 길로 나아가는 숨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크리스 밀러 교수는 미국이 2022년 반도체 수출통제를 가시화하며, 중국이 향후 10년간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이의 실현을 위해 미국은 ‘칩4’ 국가인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등과 협력 관계를 이어갈 것도 구상 중입니다. 이러한 흐름이 장기화된다면 ‘중국용 반도체’와 ‘중국 이외의 반도체’로 글로벌 시장이 양분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특히 나노 경쟁으로 치닫는 칩의 기술적 한계 상황이 오면, 결국 설계 중심의 경쟁이 벌어질 것이며 미국이 중국에 압도적 우위를 갖게 될 것이라는 크리스 밀러 교수의 분석입니다.

‘반도체 시장’을 무대로, 세계 패권을 거머쥐기 위한 양대 강대국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3. “무기체계 표준 반도체 만든다”, 국방반도체 독자개발 역량확보 나선 K-방산

지난 8월 방위사업청과 대전시 주관으로 열린 '국방 AI & 반도체 발전 포럼'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전쟁의 와중에서 K-방산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8월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첨단무기체계 성능 향상의 핵심인 국방반도체 개발역량 강화를 위해 국방반도체 발전전략 수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힙니다.

무기체계가 첨단화/고도화되며, 아직까지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국방반도체의 독자적 개발을 위한 기술역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방위사업청은 △민군 겸용 반도체 개발을 우선 검토하고, △민군 겸용이 어려운 반도체는 국방R&D로 독자 개발한다는 계획입니다. 아울러 △파운드리 공정 등 국내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시스템 반도체 설계·패키징 관련 핵심기술 개발 및 다수 무기체계 적용이 가능한 '표준 반도체' 개발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이와 관련해 12월까지 방위사업청 주관으로 국방반도체 종합 발전전략 수립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민간 부문에서도 반도체 투자를 위한 연합군이 출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7월 SK그룹이 신한금융그룹·LIG넥스원과 손잡고 글로벌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투자에 나선다고 밝힙니다. 일본을 시작으로 반도체 소부장 분야의 강소기업에 투자해 미국·중국 간 패권전쟁 속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입니다.

전문가들은 국방반도체가 국가가 직접 통제하고 관리하는 체제로 변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향후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은 물론, 팹리스와 파운드리, 패키징, 체계개발까지 全 밸류체인에 대한 종합적인 모니터링 및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군/산/학/연/관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美 대통령이 웨이퍼를 손에 든 순간, 대한민국에도 거대한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시기가 본격화됐으며, 당분간 숨가쁜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끝>